우리는 팬데믹을 겪었고, 건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일까. 밤 산책을 거닐다 보면 삼삼오오 모여 본격적인 달리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대학생 모임과 혼자서 묵묵히 잰걸음으로 페이스를 유지하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러너’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러닝은 진입장벽이 낮은 스포츠다. 요즘에 와서는 ‘러닝 크루’는 흔해졌고, 혼자 달리더라도 시간과 동선을 기록해 인증하는 언택트 러닝이 가능해졌다.

유수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도 지금 시기에 많은 러닝화를 내놓고 있다. 최근 발매된 ‘나이키 알파플라이 3 프로토’와, 1월 30일 재발매되는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 1’이 대표적이다. 이 둘은 발매가가 각각 32만 9천 원, 59만 9천 원이다. 일반 스니커즈와 비교했을 때, 러닝화 특성상 수많은 인체공학적 기술력이 담겨있기 때문에 판매 가격 자체가 높은 편이다.

순서대로 나이키 알파플라이 3 프로토, 아다디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 1.

대체로 쿠셔닝 기술이 응집된 미드솔 부분이 가격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긴 하나,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여기에는 운동 상황을 고려한 어퍼의 소재, 운동 능력을 고려한 아웃솔의 그립감과 유연성, 사용자를 고려한 러닝화의 지지력과 반발력, 안정감, 경량성 등이 있다. 하물며 일반 러닝화가 아닌 풀코스 마라토너를 위한 러닝화는 더욱 그 조건이 까다롭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두 제품은 정가를 차치하고서라도 리셀가가 현재 1.5배에서 2배 이상 뛰었다. '없어서 못 사는' 러닝화가 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작년에만 두 번의 대회에서 마라톤 세계 신기록이 깨졌던 사례를 들 수 있다. 먼저, 케냐의 마라토너 켈빈 킵툼이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0분 35초라는 마라톤 신기록을 세웠다.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았던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의 2시간 1분 9초대 기록이 겨우 1년 만에 깨진 것이다. 마라톤 역사에서 2시간 1분 이내 완주 기록은 켈빈 킵툼이 최초다. 그때 그가 착용한 신발이 나이키 알파플라이 3 프로토였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 티기스트 아세파는 2023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1분 53초의 기록을 달성, 여자 세계 마라톤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때 그녀가 착용했던 신발이 바로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 1’이었다. 2위로 들어온 케냐의 셰일라 쳅키루이도 동일 제품을 착용했다. 당시 아디다스가 협찬사였던 대회에서 아디다스 러닝화를 신고 달린 이 둘의 기록은 마치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우리는 오늘도 달린다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나이키 알파플라이 3 프로토를 착용한 채 뛰고 있는 켈빈 킵툼.

2023 베를린 마라톤에서 아디다스 러닝화를 착용한 티기스트 아세파. 다음 이미지는 마라토너 티기스트 아세파(우측)와 셰일라 쳅키루이(좌측).

러닝 트렌드가 아직 패션 트렌드의 중심부에 들어왔다고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사람들은 패션 아이템에 디자인적인 미학뿐만 아니라 기능성과 실용성까지 갈망하게 되었다. 고프코어, 블록코어 등 아웃도어 베이스의 패션 트렌드가 이제는 꽤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그 흐름을 타 주류 브랜드인 나이키, 아디다스 등과 더불어 새롭게 주목받는 러닝 브랜드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디스트릭트 비전, 새티스파이 러닝, 노다 등이 대표적이다.

디스트릭트 비전은 '건강한 마인드는 모든 운동의 가장 기초'라는 슬로건 아래 2014년에 론칭한 브랜드다. 러닝, 사이클 등 액티브 웨어를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풀어내 빠르게 마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다. 2015년에 시작한 새티스파이 러닝은 브랜드명 자체로 알 수 있듯, 컬렉션과 룩북 곳곳에서 러닝에 진심인 걸 발견할 수 있다. 브랜드 특유의 쿨함은 아워레가시 워크숍, 오클리, 호카 등 활발한 협업과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노다는 2021년에 론칭한 트레일 슈즈 브랜드로, '캐나다의 광활한 야생'에서 영감을 받아 설립되었다. 노다의 검증된 퍼포먼스와 기술력은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제냐와의 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언급한 세 개 브랜드 모두 그 역사가 길지 않지만, 단기간에 하입한 협업과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순서대로 디스트릭트 비전, 새티스파이 러닝, 노다 컬렉션 룩북 이미지.

이는 러닝화 시장도 마찬가지. 근 몇 년간 살로몬과 호카에 대한 주목도가 많이 증가한 건 결코 반짝 트렌드가 아니다. 최근 로에베,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등과의 협업으로 하입을 받고 있는 온 러닝도 여기에 포함된다.

호카는 '러닝화'하면 떠오르는 날렵하면서도 심플한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섰다. 호카의 러닝화는 대부분 어글리 슈즈 타입에 오버사이즈 솔로 개성 있는 실루엣을 자랑한다. 거기다 장거리 러너를 타겟팅한 기능성까지 뒷받침되었으니,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BoA 애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나돈은 호카를 두고 "월가에서는 호카가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능성 신발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클라우드 텍'이라는 독특한 입체 아웃솔을 가진 온 러닝도 글로벌 러닝화 시장 내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온 러닝의 슈즈는 전문 러너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스타일리시하게 착용이 가능해 이미 서구권에서는 호카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온 러닝의 신발 시장 점유율이 작년 1년 동안만 0.8%에서 6.1%까지 증가했다는 딕스 스포팅 굿즈의 통계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새티스파이와 협업한 호카 대표 모델 클리스톤

오프닝 세레머니와 협업한 호카 대표 모델 본디

온 러닝과 로에베의 협업

온 러닝과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의 협업

러너라면, ‘끝판왕 러닝화’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 1’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러닝화답게 두꺼운 라이트스트라이크 프로 폼이 벌키한 실루엣을 자아내지만, 그와 대비되는 138g이라는 초경량 무게와 포어풋 로커 구조로 추진력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구매까지 희망하는 슈팸들은 30일 화요일 오후 4시 30분까지 아디다스 코리아 앱에서 응모할 수 있다는 점 참고하기 바란다.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 1.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러닝 트렌드'